마침내 증오를 뛰어넘은 듯 한 기분은 드는가. “아웃” 남들도 다 그러고 사는데 왜 그녀들은 그런 방법을 택해야 했는가? 라기보다 누구라도 그런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라는 것이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이 더욱 흡인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평범함에 가까운 군상들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들의 성격과 개성에 맞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지극히 사회구성원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뜨악한 사건보다 그것을 급급하게 해결해 나가는 현실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의 섹스-강간 장면은 소설다운 과장됨은 있으나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일탈의 종지부로 섹스를 택한 것이 좀 진부하게까지 느껴졌다.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파탄 직전의 가정생활에 남편과의 생활은 금욕적이기까지 한 여자가 일탈의 방법으로 택하기에 '섹스'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다. 결말을 읽는 동안 여성의 강간판타지와 유부녀의 불륜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녀의 섹스가 강간이라는 특수한 경우인데다 마지막을 살인으로 마친다는 것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오르가즘과 죽음의 관계 역시 그리 참신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갖게 되는 공범의식 정도가 마사코와 사타케의 섹스의 가장 큰 의의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증오에서 애증, 또는 애정까지의 감정 변화를 이성간에 가장 빠르게 전환할 수 있으며 동지의식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섹스임에는 틀림없으나 역시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아웃의 가장 큰 묘미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괴물은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그로테스크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상황-즉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간이다. 트랙백 된
Y.JP님의 포스팅의 마지막 줄에서처럼 납득을 통해 상황에 익숙해짐으로써, 즉 인간의 선택을 함으로써 괴물이 된다.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쉬운 예로는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경우에도 지나고 나면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 혐오스러움을 느끼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방법을 취했음에도 오히려 그것을 인간답지 못하다고 매도하며 혐오스럽게 느끼는 것에서 기리노 나츠오의 괴물이 탄생한다.
현실에 타협하고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에서 불편함과 혐오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아이러니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는 더이상 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박을 하고 아내를 구타한 피살자가 죄인인가? 아니면 실수로 그러한 남편을 죽인 야요이가 죄인인가? 아니면 친구의 살인을 은닉하기 위해 시체를 토막내는 마사코가 죄인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이 덮어쓴 죄를 파헤치기 위해 마사코를 증오하는 사타케가 죄인인가? 독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다. 상황의 아이러니는 다른 사람을 죽이던가, 혹은 자신이 죽지 않는 이상은 끝나지 않는다. 사실상 그녀들은 '아웃'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 보다는 '아웃'되는 현실로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극한까지 몰아붙힌 아이러니 속에서 인물 고유의 개성이 살아나고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괴물이라 부르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불편하고 씁쓸해하며, 꿉꿉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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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쓰다가 길어져서 트랙백해서 포스팅으로.